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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하는 마음: '빈곤' 다시 바라보기

진원
2023-10-25
조회수 356

발전공부모임 띵동의 첫 글을 준비하며, 우리 모임의 첫 목적인 발전(Development)의 본질적인 철학과 가치에 대해 보다 깊이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 개인의 국제개발 분야 커리어 초기에는 빈곤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국제개발(International Development)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하며, 이를 실현해 보겠다는 당찬 포부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커리어를 쌓아갈 수록, 빈곤, 인간다운 삶 등의 개념은 무엇이고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러다 점점 내가 다루고자 했던 빈곤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잊은 채,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어떤 철학과 가치를 고민하기에는 해야 하는 일을 해내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너무 분주했다.


발전공부모임 띵동을 시작한 덕분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빈곤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 본다. 여전히 빈곤은 무엇인지, 빈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답은 없지만, 그간 읽었던 책들을 통해서 얻은 빈곤에 대한 관점을 정리해 보려 한다.



빈곤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넓히는 계기가 되어 준 책이 있다면, 바로 석사과정 중 강의를 통해 접하게 된 아마티야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책이다. 센이 정의하는 빈곤은 역량(Capability)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역량이란 인간이 달성하거나 되고자 하는 삶의 모습을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데,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것, 적정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 등이 역량의 예시이다. 센은 빈곤을 역량과 연계하여, '개인이 가치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의 박탈', 즉 '역량의 박탈(capability deprivation)'로 바라보았다. 이는 하루 몇달러 이하와 같이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빈곤을 정의하던 고전적인 방식에 도전하는 개념 정의이다. 소득은 빈곤을 정의함에 있어서 여전히 중요한 개념이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센의 빈곤 정의는 나의 빈곤에 대한 사고의 범위를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개발 분야에서는 개인이나 사회의 빈곤을 경제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하려는 실수를 계속해서 범하고 있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님에도, 여러 사회적인 요소들은 여전히 결핍되어 있음에도 경제적인 측면에만 집중하며 자원을 투입한다. 이는 오히려 돈이 가져다 주는 악영향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쉽게 예를 들 수 있는 방글라데시의 소액대출 사업들. 방글라데시의 무함마드 유누스는 은행의 대출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 소액대출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면서 프로젝트를 더욱 확장해 갔다. 결국 빈곤 퇴치에 기여하는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하지만 라미아 카림의 ‘가난을 팝니다’라는 책에서 깊게 다루어 졌듯이, 소액대출사업으로 인해 마을 내 젠더기반 폭력이 증가하고 마을 공동체가 갈등과 폭력으로 와해되는 등 수많은 실패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소액대출사업을 진행했지만 결국 그 돈을 빼앗아 사용하는 사람은 여성들의 남편이었고, 대출자들을 그룹으로 묶어 연대 책임을 지게 하면서 돈을 갚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다른 그룹원들의 멸시와 폭력이 발생하는 사례들이 다수 보고되었다. 실패에는 여러 배경과 이유들이 있겠지만 결국 여성들의 빈곤을 경제활동 참여기회 부족, 금융접근성 부족이라는 경제적 측면으로만 접근한 나머지, 그 밑바탕에 존재하는 훨씬 더 견고하고 복잡하면서도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와 관념을 간과한 결과임은 분명하다.



빈곤에 관해 내게 새로운 영향을 준 또다른 책은 조문영 교수의 ‘빈곤과정’이라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보면서는 빈곤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혼란을 느꼈다. 아니 한편으로는 애초부터 빈곤이란 무엇인지 명료하게 정의내리기는 불가능한 개념이라는 확신이 섰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겠다.


책의 저자 조문영 교수는 발전대안 피다와의 인터뷰 "글로벌 빈곤의 복잡한 배치 속에서 스스로 다양한 연결을 만들고 감각하기를 바라요" 에서 빈곤과정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로 ‘빈곤을 쉽게 정의하려는 충동들을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서, 빈곤이라는 문제에 대해 정의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빈곤을 단순화하고 축소시키는 작업이라고 언급한다.


빈곤을 해결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가지고 국제개발 분야 처음 발걸음을 디뎠던 나는, 이제는 빈곤을 쉽게 정의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는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진다. 다만, 빈곤을 명료하게 정의 내리려는 노력보다 빈곤에 대한 이해와 사고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히 깨달었다. 빈곤을 어떤 정의에 가두고 그 정의에 국한된 해결책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내릴 수 없는 빈곤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사고와 이해의 깊이를 확장시켜 가는 것이 내게 필요한 일이다.


 ‘빈곤과정’에서 이야기하는 빈곤의 특징 중 인상깊었던 것은 빈곤의 역사성이다. 빈곤은 현재 시점의 상태를 기준으로 빈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 혹은 집단의 역사, 경험 그리고 여러 사회환경과의 상호작용의 길고 복잡한 과정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마주한 누군가의 빈곤은 내가 맞닥뜨린 그 시점에서만 존재하는 현상이 아니라, 이전부터 존재해 온 여러 과정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이들이 지나온 수많은 과정에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들의 여러 노력과 좌절이 함께 녹아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지난 과정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현지조사 혹은 기초선조사라는 이름으로) 어느 한 시점에서 모아지는 자료들만 의존하며 빈곤 여부를 판정할 때가 많다. 대상 지역사회와 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외부인인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이들의 문제와 그 원인을 판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빈곤의 역사성을 우리의 국제개발 현장에 적용시키기는 쉽지 않다. 지역사회와 개개인의 과거를 모두 고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대상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현재 모습 뿐만 아니라 지나온 과거의 경험과 이야기들을 이전보다 조금 더 신중히 고려하며 접근한다면, 적어도 의도하지 않았던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하는 경우들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큰 틀에서의 적용은 어렵겠지만, 국제개발 현장에 참여하는 개개인이 먼저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지역사회와 주민들을 바라본다면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일들을 준비하고 실행할 수 있지 않을까.



발전의 본질적인 가치와 철학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빈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빈곤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입체적인 빈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국제개발의 참여자로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다른 고민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여러 고민의 과정에서, 빈곤을 정의하고 규정짓기 보다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빈곤의 원인, 현상, 특성, 내외부와의 상호작용 등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계속해서 사고를 확장해 가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 같다. 


때로는 빈곤에 대한 부족한 이해로 인해, 내가 하는 일이 예상치 못한 부정적인 영향을 야기하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고민과 공부를 통해 보다 본질적인 발전의 모습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져 갈 수 있다는 믿음 덕분이다. 우리가 빈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게 사고할 수 있다면, 불평등하게 나누어진 자원들이 조금은 더 필요한 곳에 잘 배분되어 빈곤을 줄이는 데에 사용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이기도 하다. 


띵동 모임을 기획하면서, 발전에 대한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첫 글은 빈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하게 되었는데, 앞으로 더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내가 생각하는 발전이란 무엇인지, 어느 지향점을 향해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글들을 적어가고 싶다. 다양한 생각과 관점들을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하며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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