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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 Harm: 깊게 새길 마음

진원
2024-05-20
조회수 233

해외파견 근무를 할 당시였다. 어느 날 직원들이 와서 한 사업대상마을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보고해 주었다. 당시 소속기관에서는 5년 이상 대상 마을들에서 지방정부 및 지역 주민들과의 매우 좋은 파트너십을 형성하며 지역개발사업을 진행해 왔었기 때문에, 조금은 놀란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직원이 공유해 준 소동의 배경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그동안 지역개발사업을 수행해 오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 소규모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던 주민들이 있었는데, 그 주민들이 본인들은 우리 기관 및 지역정부의 활동에서 소외당한 것 같다며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지역 주민들로부터의 항의는 개발협력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놀랐던 이유는, 우리가 그 공동체의 존재 자체를 파악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고작 2년 정도 머물다 가는 사람이었지만, 내 소속기관은 당시 기준 5년 전부터 해당 지역에 지역개발사업장을 열고 지역개발프로젝트를 매년 진행해 왔다. 모든 과정에서 현지 지방정부와의 매우 협조적인 지원이 있었고 지역 주민들과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신뢰를 쌓아왔다.  모든 활동을 할 때마다 주, 군 단위 지방정부, 지방교육부, 보건소, 지역개발위원회, 지역사회 보건요원, 협동조합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논의 과정을 거쳤고, 이를 바탕으로 그 지역에 대해 정말 많은 것들을 파악하고 있노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과정 속에서도 사업대상지역 바로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존재는 알지 못했다. 그 주민들은 선조들의 다툼과 갈등으로 중심 마을에서 벗어나 따로 소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들이었고, 우리가 만난 수많은 이해관계자들 중 누구도 우리에게 그들의 존재를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사실, 우리가 묻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 더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해당 지역의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누군가의 정보 공유 없이는 그들을 발견하기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내가 느낀 것은 우리는 철저히 외지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주민 참여, 현지화 등  여러 듣기 좋은 접근법을 적용하며 해당 지역사회와 매우 가까워졌고 이곳의 문제는 우리가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곳의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외지인에 불과했다. 외국인인 한국인 파견직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모두 도시에서 살아온 기관의 현지 국적 스태프들도 농촌지역 주민들에겐 외지인의 존재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내가 국제개발이라는 분야의 일을 하면서, 이 일의 두려움을 느끼게 된 계기 중 하나이다. 해당 사업장은 1년 주기를 기준으로 새로운 지역개발 프로젝트들을 발굴하고 수행했기 때문에 매년 지역의 이해관계자들과 지역사회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솔루션을 찾기를 반복해 왔음에도, 우리는 그 지역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 좋은 일이라 자신하며 임했으나, 되려 우리의 일로 누군가에게 소외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이들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몸담은 국제개발 현장의 현실이다. 



이 경험을 하기 이전부터 국제개발 활동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 계기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었던 '가난을 팝니다'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가난을 팝니다'의 저자인 인류학자 라미아 카림은 오랜 현장 연구를 통해 무담보, 저이자로 신용대출 서비스를 제공해 줌으로써 빈곤층의 빈곤 감소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던 파이크로파이낸스(소액금융)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밝혀냈다. 


농촌지역 빈곤층, 특히 여성들에게 100~300달러 수준의 소액대출을 제공해 줌으로써 빈곤층의 경제적 역량을 강화시키고 창업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마이크로파이낸스 모델. 특히 그라민은행, BRAC과 같은 기관들이 방글라데시에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여러 성공 사례들이 연구되어 논문화되었고, 세계은행은 변화를 위한 촉매라는 찬사를 날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라미아 카림은 오랜 기간 동안 현장 연구를 진행하며, 마이크로파이낸스로 인해 발생한 여러 부작용들을 발견했다. 대출금 상환을 하지 못하는 대출자에 대한 공동체의 낙인과 모욕, 여성을 대상으로 대출금을 제공했지만 결국 남편들에게 대출금의 사용권한을 빼앗기게 되는 현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들. 마이크로파이낸스 프로젝트가 실행된 지역사회 내에서는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사회의 규범, 관습, 문화, 여러 권력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긍정적으로만 작용할 것 같았던 마이크로파이낸스 프로젝트들은 이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여러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100%에 가까운 대출회수금, 소액대출을 통해 경제적 상황을 개선시킨 여러 성공 사례들로 표현되는 프로젝트의 성과 뒤에 숨겨진 또 다른 현실이었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2015년 당시에는 한국 국제개발 계에서도 여러 NGO들이 마이크로파이낸스 프로젝트들을 다수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 책의 내용은 내게 꽤 많은 고민을 던져주었다. 세계의 가장 대표적인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은 그라민은행의 설립자이자 200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무함메드 유누스의 책들도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가난을 팝니다'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다. 


몇 년 뒤 영국에서 석사과정을 하면서도, 학계에서는 마이크로파이낸스를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이크로파이낸스와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여러 논문들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마이크로파이낸스의 긍정적인  성과를 다룬 연구들만큼 부정적인 영향을 비판하는 논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만들어진 사업 모델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여러 변화의 모습들. 하지만 그 긍정적인 모습만 조명하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어두운 이면들이 다수 존재였다. 누군가에는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촉매제가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 나를 비롯한 외지인들의 개입으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계기들을 통해 가지게 된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들에 대한 두려움은, 나로 하여금 국제개발이라는 분야를 좀 더 신중히 접근하도록 만들었다. 나의 개입이 누군가의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신중함으로 이 분야에 임하고 싶어졌다. 이제는 'Do no harm'이라는 캐치프래이즈가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물론,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계산해 가며 누구에게나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완벽한 프로젝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대한의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들을 예방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들을 미리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해 보인다.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긍정의 방향으로 발현시키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나는 얼마나 그 지역사회와 주민들을 알고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의 개입이 이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을 얼마나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는가. 내가 가진 두려움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나 스스로에게 던지려고 노력하는 질문이다. 끊임없는 이 질문에 계속해서 답을 하기 위해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연구의 가장 간단한 정의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


UN SDGs의 슬로건인 "Leave No One Behind"를 다시 생각해  본다. 흔히 우리는 이 슬로건을 누구도 소외되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는 가장 어렵고 소외된 이들에게 까지 도움의 손길을 제공하기 위한 원조의 양적・공간적 확장과 확대의 의미로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가진  두려움에 의하면, 어느 형태이든 원조의 확장과 확대가 무조건적인 성공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Doing harm의 행위가 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또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대상 지역사회의 구조, 규범, 관습,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그 내외부의 복잡하고 다이내믹한 관계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개입이 가져다주는 다양한 영향들을 밝혀 내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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